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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및 리뷰/영화 및 드라마

[영화 리뷰] 지울 수 없는, 지워서는 안 될 22일 영화 <남영동 1985> - 정지영 감독

 

 

<남영동 1985>

 

지울 수 없는, 지워서는 안 될 22..’

 

감독 정지영

 

 

‘씨x.. 정말 더럽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생각난 한마디다. 난 딱히 이 영화에 흥미가 있었다거나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대학생 2학년 때  작품의 시대적 배경 때문에 봐야했던 영화 26년을 대신하는 영화일 뿐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영화였고 그렇기에 어떤 기대도 없이 보게 된 영화였다. 다만 <부러진 화살>의 감독 정지영감독이 만든 영화라 어떤 영화일까? 라는 생각은 들었다.

스토리는 김근태가 민주화 운동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1985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간 고문을 받는 것을 다룬 영화이다. 고문을 당하며 인간으로써의 가치를 철저히 분쇄당하는 그 상황과 심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의 주된 사건은 고문  1가지 밖에 없다. 그랬기에 나는 영화를 보며 <쏘우>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었다. <남영동1985> 역시 고문의 연속을 보여주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 인물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본다면 이것들을 통해 지금까지 숨겨졌던 진실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될 것이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고 무식해서 대공분실이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몰랐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대공분실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이적행위,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 행위를 한 사람(=간첩)을 체포하여 조사하고, 방첩 목적을 위하여 대한민국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설치한 기관’ 이었다. 그러나 대공분실은 영화에서 보여 준 듯이 그러한 목적이 아닌 단지 고문을 자행하기 위한 밀폐된 공간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남영동이라 함은 공포의 상징이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영동으로 끌려가면 멀쩡히 돌아오는 것이 신기 할 정도였을 테니 말이다.

 

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대공분실)에서만 사건이 일어난다. 대공분실이라는 공간은 인물들의 행동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공간이며 감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515. 고문의 피해자들은 그곳이 좁았으며, 물고문하는 욕조가 있었고, 근처 서울역 기차소리 정도가 새어 들어오는 곳이라고 하였다. 공간 구성은 간단하지만 답답하고 벽으로 가로 막혀 있으며, 항상 감시당하는 느낌을 준다. 고문실 중앙엔 책상이 있고 뒤편엔 샤워기와 욕조, 간이용 침대가 있지만 본래의 목적을 잃은 지 오래 되었다곡선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직선의 딱딱함만이 느껴졌다. 그런 수직선들 속에서 비인간적인 모습들이 전개가 되어 고문을 자행하는 모습들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 김종태의 발가벗은 몸과, 고문을 가하는 이들의 핏빛서린 눈, 김종태의 입에 뿌리는 빨간 고춧가루가 대공분실 515호의 흑백 톤과 대비되어, 고문의 폭력성이 한층 더 드러나 보였다.

남영동 건물은 현재 인권보호센터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고문이 자행되었던 모든 방들은 이전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져 있고, 물고문이 자행됐던 욕조 역시 철거되어 있다. 다만, 1987 6월 항쟁을 불러일으킨 박종철 열사가 고문 받았던 취조실만이 복원된 상태라고 한다. 나는 인권을 해체시키던 공간이 인권보호센터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참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남영동 1985>는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된다. 그 목적은 권력이 한 개인의 신체를 유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인 듯하다. 감시와 처벌, 권력, 폭력을 세세하게 그리고 있고, 시각적 충격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의 존엄성이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한 시대의 증언을 목격하는 관객들은 참으로 가슴 아플 것이다. 사실주의적인 경향의 감독들은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감독의 주관적인 개입을 가급적 배제하고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떻게 소재를 조작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더 큰 관심을 둔다. 사실주의 영화들에서는 관객들은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이 영화라고 인식하지 않게 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적 기교들이나 만드는 사람의 개입을 가급적 배제한다.

 

<남영동 1985>에서 장의사라 불리는 이두한은 515호에 들어오자마자 김종태의 몸을 살피고선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인다. 고문을 끝내고선 휘파람을 불며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갈 준비를 한다.

한 마리의 파리를 보며 자유를 갈구하는 김종태의 갈망하는 눈빛, 물고문과 전기 고문으로 보는 사람마저 손발에 힘을 주게 만들었던 실제와 같은 장면들은 잊혀가는 1985년 당시의 아픔을 후대에도 잊지 않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사실주의는 영화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고, 관객이 현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 타인의 인간성에 대해서도 생각 할 수 있게 하는데, 고문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과는 관계없이 라디오를 통해 야구 중계를 듣는다거나 자신들의 승진에만 급급해 하는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잔혹함과 개인주의를 느끼게 해 주는 듯 하다그리고 여자친구에 집착하는 경찰, 야구에 집착하는 경찰 등을 보았을 때 3S 정책이 도입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국가 일을 하는 경찰들이 그 정책에 빠져있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은 찝찝함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인상이 깊은 점이 있었다면, 바로 배우들의 연기이다. 그들은 고문이라는 일상생활에서는 겪어보지도 못 한 것들을 표현해야 했다. 가해자 역할의 배우는 최대한 진짜처럼 가해를 해야 하고, 피해자는 최대한 벼텨야만 했다. 김종태 역을 맡은 박원상배우는 실존인물의 생애에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22일을 체험했다. 그는 김근태 민주 통합당 상임고문이 당했던 수많은 고문들을 실제로 체험했고, 그로 인해 수반되는 고통들을 꾸미지 않고 본능적으로 표현했다. 박원상이 가장 먼저 직면한 두려움은 육체적인 공포였다. 박원상은 물 공포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물고문은 더욱 큰 산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고문을 당하는 김종태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재현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육체적인 감당이 된 후에야 심리적 공포에 대한 연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칠성판에 팔 다리가 묶인 채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하는 신은 생각 이상의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포의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오래 참고, 제대로 고통을 표현할까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박원상 배우는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신체의 변화도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의 박원상배우는 비교적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의 몸은 말라가고, 눈은 퀭해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실제일까? 저 장면은 내가 보고 있는 게 사실인가? 싶을 정도로 연기라는 목적으로 감내하기엔 고통스러워 보이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그러기에 나의 눈살은 점점 찌푸려져만 갔다.

 

영화의 결말에서 김종태는 이두한과 전혀 다른 상황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시소처럼 그들의 역할과 신분역시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김종태는 자신에게 용서를 구걸하는 이두한을 뒤로 하고 나가려 하지만 김종태의 귀에는 휘파람소리가 들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휘파람 소리는 과연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김종태의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 시대가 변했지만 그의 내면에는 영원히 아물 수 없는 상처. 등으로 생각 했다.

그러나 고통, 죽음과 연관된 그 휘파람 소리는 편히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